▲자본주의와 그 적들…사샤 릴리 지음·한상연 옮김 | 돌베개 | 484쪽 | 2만원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반(反)자본운동도 세계화하고 있다. 2011년 9월19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시위는 두 달 넘게 미국 주요 대도시를 휩쓸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를 겨냥했던 시위는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로 이어졌다. 10월15일에는 세계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민중의 자각’이 자본주의를 강타한 것이다.

반자본운동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 무성하다. ‘1%에 맞선 99%의 저항’이 신자유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라는 낙관론이 고개를 드는가 하면,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부에서는 조만간 자본이 재정비를 거쳐 재기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자본의 위기는 대안 찾기에 골몰하던 좌파 사상가들에게는 최대의 호기다.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가. 작가이자 진보사상을 소개하는 미국의 라디오방송 ‘어겐스트 더 그레인’의 진행자인 사샤 릴리가 데이비드 하비, 노엄 촘스키, 마이크 데이비스 등 좌파 사상가 17인을 만나 현안을 물었다. 질문의 방향은 크게 3가지였다. 현재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그간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은? 자본주의 이후의 길은 무엇인가. 책은 좌파 사상가들과 함께 자본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 대담집이다.

좌파 사상가들은 자본주의가 위기라는 데에는 모두 공감했다. 레오 패니치(캐나다 비교정치연구소 연구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작금의 상황을 자본주의 역사상 4번째 위기라고 규정했다. 앞서 1873~96년 제국주의 위기,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케인스주의의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패니치는 현재의 위기 이후를 낙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현재의 자본 위기가 노동자가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맥낼리(캐나다 요크대 교수)는 “위기는 자본의 노동지배가 재조직화되는 계기이자 새로운 저항의 공간이 형성되는 계기”라며 위기의 양면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전과 달리 민중이 대규모 시위와 파업, 소요 사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며 이번 위기를 계기로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대안이 들어설 여지가 넓어졌다고 전망했다.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것인가. 그레그 앨보(캐나다 요크대 교수)는 “어느 정치세력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벗어버리거나 신자유주의를 뒷받침해온 자본가 우위의 국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경제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고 보았다.

좌파 사상가들은 30년간 위세를 떨친 신자유주의의 앞에서 오랫동안 좌절해 왔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며 넋두리를 내뱉곤 했다. 

패배주의에 너무 오래 젖은 탓일까. 자본주의의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 찾기는 영 신통치 않다. 

대담에 참여한 좌파 사상가들은 반자본주의 혁명, 유토피아의 열망을 되살려내자고 외친다. 사샤 릴리와 노엄 촘스키는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을 옹호하며 반자본주의를 얘기했지만, 자본주의 이후가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는 명확지 않아 보인다. 

책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보다 현재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에서 빛을 발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 축적보다는 상위계급에게 유리한 쪽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거나 “기축통화인 달러화가 다른 통화로 대체될 가능성은 없지만, 달러화의 장기적 전망에는 의문부호를 찍어야 한다”(데이비드 맥낼리)는 분석은 정확해 보인다.

대화체로 풀어낸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쉽고 명쾌하다. 자본의 역사와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뿐 아니라 최근의 세계경제 동향 분석까지 망라하고 있어 경제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