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심재우 ·한형주 외 지음 | 돌베개 | 394쪽 | 2만8000원

서울시장 보궐선거 다음날인 지난 10월27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출연한 도올 김용옥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4대강 사업을 강하게 비판하자 ‘나꼼수’ 진행자들이 슬몃 추임새를 넣는다. “선생님, 역대 군주 중에서 ‘엠비’ 하고 비슷한 형태의 군주가 있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도올의 목소리가 더 높아진다. “나는 한국 역사를 중국 고전을 공부한 만큼 깊게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비교가 될 만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 과거의 군주는 사서오경을 다 떼면서 올라간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야비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국가운영에 대해서 조선의 왕들은 밑의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를 거쳐야 해서 그렇게 독재를 하지 못해요. … 연산군도 폐위를 당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를 끼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도올의 조선조 제왕에 대한 평가는 부분적으로는 옳다. 전통시대의 왕은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존(至尊)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또 세속을 지배하면서 제사를 통해 신과 소통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당시 ‘짐(朕)은 곧 국가’였고, 왕이 밟는 땅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모두들 천명(天命)을 받아야만 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왕민사상, 왕토사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왕(王)’이라는 한자는 하늘과 땅과 사람, 이 셋(三)을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왕은 고뇌하는 인간이었다. 국왕인 그 앞에는 처리해야 할 사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관들은 왕의 지근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사헌부·사간원의 대간들은 왕의 정책 결정을 감시·감찰했다. 왕은 또 끊임없이 공부한 평생학습자였다. 세자 때에는 사(師)와 부(傅)라는 독선생으로부터 유교철학과 제왕학을 배웠다. 국왕이 되어서도 공부는 계속됐다. 신하들과 학문·정치를 토론하는 경연(經延)이 그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의 일상’ 연구팀이 펴낸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국정 최고책임자임과 동시에 한 인간이었던 조선시대 왕의 일상과 사생활, 건강관리 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왕의 하루는 어땠을까. 조선의 ‘모범 군주’ 영조는 대개 새벽 5시에 기상했다. 첫 공식업무는 아침 경연이었다. 그에게 경연은 학습의 장이자 신하들과의 소통 공간이었다. 경연 이후 아침 식사를 한 뒤에는 조회(朝會)를 열었다. 오후에도 주강(晝講)이라는 경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강 이후에는 지방에 파견된 관리들의 문안을 받거나 수령으로부터 지방행정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오후 5시면 공식 업무는 끝이 났다. 그러나 영조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저녁에 다시 경연에 참석했다. 때로는 낮시간에 미뤄뒀던 업무를 챙겼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출연하는 한석규 l 출처 : 경향DB


왕이 내키지 않으면 이러한 일과시간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영조는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했다. <승정원일기>는 영조가 52년의 재위기간에 3500여회의 경연을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평균 68회, 한 달에 6번꼴로 공부를 했다는 얘기다.

궁궐은 왕이 국정을 처리하는 업무공간인 외전(外殿)과 사적인 생활공간인 내전(內殿)으로 나뉜다. 영조의 주 공간이 외전이었다면 연산군은 내전이 활동무대였다. 연산군은 ‘흥청(興淸)’이라 불리는 장악원의 기생들을 내전에 끌어들였다. 한때 그 수가 2000여명까지 늘어났다. 연산군은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 물개, 곰, 표범 등의 정력식품을 먹었다고 한다. 연산군은 이들 식품을 공급받기 위해 창경궁 후원에 동물원을 설치했다. 

조선의 왕들은 하루 다섯번 수라상을 받았다. 정식 식사는 아침 10시쯤과 오후 5시쯤 두 번이었지만 아침 전, 점심, 야식 등 3번의 간식이 제공됐다. 수라는 12가지 반찬이 차려진다 해서 12첩 반상이라 불렸다. 그러나 탕, 찜, 김치류, 장류 등 국과 기본 밑반찬을 포함하면 반찬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궁궐을 생활공간으로 삼았던 조선의 왕들은 운동과 무예로 체력을 단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태조와 태종, 세조는 활쏘기와 사냥을 즐겼다. 세종은 격구에 대해 이론적으로 환히 꿰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을 즐기지는 않아 풍병, 종기, 당뇨, 비만 등 성인병이 끊이지 않았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사극 열풍과 함께 왕실과 군주의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고증이 안돼 많은 부분이 픽션과 상상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역사학과 한문학 전공자 등 6명이 공동 작업한 이 책은 그간 왕실 연구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사료의 한계로 서술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흠이다.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