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도 아름답고 저녁에도 아름답다. 맑은 날에도 아름답고 흐린 날에도 아름답다. 산도 아름답고 물도 아름답다. 단풍도 아름답고 바위도 아름답다. 멀리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가도 아름답다. 불상도 아름답고 스님도 아름답다. 좋은 안주가 없는 탁주라도 아름답다. 들어줄 아름다운 사람이 없는 초동의 노래도 아름답다.

요컨대 그곳에는 그윽한 아름다움, 상쾌한 아름다움, 툭 터진 아름다움, 아슬아슬한 아름다움, 담박한 아름다움, 화려한 아름다움, 그윽한 아름다움, 조용한 아름다움이 있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아름다움이 이토록 많을 수가 있을까. 

-문무자 이옥(李鈺, 1760~1813)의 ‘중흥유기’(重興遊記, ‘이옥전집’에서)



“글 쓰는 사람의 고민은 아름다움을 불완전한 도구인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작가 김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일까. 작가들의 글에는 온갖 비유와 과장, 미사여구가 동원된다. 200여년 전 북한산에 오른 이옥도 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돼 그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쓰여진 글은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하다. 그는 북한산의 가을을 대하고 ‘아름답다(佳)’만을 되풀이했다. 위의 길지 않은 글에도 ‘아름답다’는 말이 무려 26번이나 나온다. 작가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까. 오히려 이옥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비작가적’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산문의 새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조선 후기 문단의 이단아 이옥은 1793년 가을 북한산을 찾았다. 4박5일 동안 중흥사를 중심으로 북한산성 일대를 돌아본 그는 당시의 일정과 감흥을 ‘중흥유기’에 담았다. 탕춘대, 산영루, 부왕사, 행궁, 상운사, 칠유암 등 유적들을 샅샅이 훑은 그가 북한산에 대해 내린 총평은 ‘아름답다’였다. 북한산 예찬은 이옥뿐 아니다. 그에 앞서 이정귀는 단풍 든 북한산을 ‘금으로 수놓은 세계(錦繡世界)’라 했고, 이덕무는 북한산을 가장 좋아하는 산으로 꼽았다. 이 가을, 그 북한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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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