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 병법을 알 것이다. 비유하자면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다.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다.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병(騎兵)이 기습 공격하는 것이다. 억양반복(抑揚反復)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신호열·김명호 옮김 ‘연암집’에서)

출처: 경향DB



“시인은 전사(戰士)”라고 말한 이는 김남주 시인이었다. 문학은 사회부조리에 맞서는 투쟁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암은 글쓰기 자체가 전투라고 말한다. 좋은 전략전술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듯, 글쓰기 방법을 터득한 자만이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 방법은 책상머리에서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광범위한 독서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때로는 현장에 파고들고 사건과 맞닥뜨리는 경험도 요구된다. 계속되는 습작을 통해 아름다운 문장을 빚어내야 한다.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수없이 붓방아를 찧어야 한다. ‘다른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우러러보고, 케케묵은 작품에서 찌꺼기나 줍는’(仰脣吻於他人 拾影響於陳編) 따위는 결코 글쓰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글쓰기가 전쟁이라면, 작가는 전장의 장수이다. 신춘문예 응모를 앞두고 문청(文靑)들이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바야흐로 ‘글들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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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