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와 그림은 보잘것 없는 기예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하여 선비가 글씨와 그림을 치지도외한 채 입에 담지 않는다면 그 또한 그릇된 일이다. 요사이 인물의 옆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고 다른 쪽 귀 하나는 어디에 붙어 있나 찾고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이런 사람이 대개 그런 부류이다. 그런 자의 안중에는 특별한 무엇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중략) 가을볕이 방안에 쏟아져 들어올 때 화폭을 펼치고 상상을 해보라. 꽃과 나무가 주는 그윽하고 깊은 정취,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풍경, 싱그런 신록 속에 멋진 바위가 어우러진 정경, 그리고 술잔을 들고 열어놓은 창문에 기대 있는 그 누군가를 말이다. 아! 그 사람과 더불어 그러한 즐거움을 함께 누릴 방법은 없을까.

-초정 박제가의 ‘문형산의 화첩에 쓴 발문’(題文衡山畵帖後跋, 안대회 옮김 ‘궁핍한 날의 벗’에서)

출처: 경향DB



옛 선비들은 서화나 골동 취미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사물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원대한 뜻을 잃게 된다는, 이른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관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완물상지는 슬로건에 불과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은 그림과 글씨, 골동품 수집을 즐겨했다. 그들에게는 “장기 바둑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는 공자의 말이 위안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능력은 품격있는 선비가 갖춰야 할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같은 학자들은 글씨뿐 아니라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좋은 글과 그림이 있으면 친구들을 불러 함께 감상했다. 작품을 기증받기라도 하면 ‘제발’(題跋:서화작품에 붙인 글)을 남겨 입수경위나 감상 등을 기록했다. 그들에게 그림과 글씨는 완물(玩物)의 대상일 뿐이었다. 재화를 불리는 투기수단이나 남과 구별짓기 위한 과시용으로 전락한 오늘날의 미술품과는 한참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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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