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어려운 속에 또 섣달 그믐을 맞이하니 艱難又到歲除天

금년의 오늘밤은 지난해와 판이하네 此夜今年異往年

곳곳에 의병들의 시체 눈속에 쓰러져 있는데 幾處猿蟲-雪裏

거리마다 정치꾼들 목전에서 설쳐대네 千郊豹虎起人前

하늘 향해 성내고 욕해도 끝내 소용없으리 向空怒罵終無補

땅 치고 울부짖으며 마음 아파할 뿐 斫地狂歌只自憐

생각하니 감당할 수 없구나 닭 울더라도 設想不堪鷄唱後

새봄 들리는 소식 도리어 아득하기만 하네 王春消息轉茫然

-매천 황현(1855~1910)의 ‘제야’(除夜, ‘황현전집’에서)


출처 :경향DB



섣달 그믐께가 되면 누구나 가는 한해를 아쉬워한다. 가족이나 연인을 떠나 홀로 한해를 보내는 사람은 그리움과 상념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러나 한해가 가는 아쉬움은 ‘수세(守歲:섣달 그믐날에 밤을 새는 일)’를 한다고 해서 삭여질 것이 아니다. 그러할수록 오히려 그리움은 깊어만 간다. 중국 시인 맹호연이 읊은 “가는 해 지키느라 집집마다 잠 자지 못하니, 그리워 한들 어찌 꿈속에 사랑하는 이의 사람이 오겠는가”(守歲家家應未臥 想思那得夢魂來)라는 시구절 그대로이다.

상념이 나랏일이나 세상사로 이어지면 세밑의 심사는 더욱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꼭 100년전, 매천이 살았던 1907년의 상황이 그랬다. 눈덮인 지리산 자락에서 일제와 맞서던 의병들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서도 서울의 정치인들은 목전의 이익을 위해 설쳐댄다. 땅을 치고 목놓아 소리쳐 보아도 새봄은 더욱 멀리만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대선을 치르자마자 닥친 세밑. 어떤 이들은 끝모를 절망에 싸여, 어떤 이들은 끝없는 희망에 부풀어 예년과 판이하게 다른 섣달 그믐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옛 글의 숨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獒樹 故事  (0) 2014.03.14
청렴과 탐욕에서 취할 것과 버릴 것  (0) 2012.02.03
섣달그믐  (0) 2007.12.25
선택의 기준  (0) 2007.12.18
‘술’  (0) 2007.12.11
‘행복의 정치’  (0) 2007.12.04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