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의 최대 통상지대인 단둥(丹東)~신의주 간 무역거래가 22일 정상화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발표된 19일 이후 일시 폐쇄된 지 나흘 만이다.

양국 간 통관 업무가 재개된 22일 오전 9시 단둥시 세관 앞마당은 북한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한 화물트럭이 꼬리를 물었다. 식품, 일용품, 건축자재용 새시, 가구 등을 실은 트럭의 앞 유리창에는 ‘통행 중국-조선’이라고 중문과 한글로 병기된 팻말이 붙어 있었다. 대부분 중국 랴오닝성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었지만 북한 평양 번호판도 눈에 띄었다.

비슷한 시간, 단둥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단둥교통물류창고센터도 빠져나가는 차량들로 분주했다. 단둥 세관과 교통물류창고센터의 이 같은 모습은 전날까지 ‘휴업’상태로 휑뎅그렁하게 텅 빈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중국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으로 들어가는 조문객 외에 상품거래에 대해서는 금수조치를 취한 바 있다.

 


액화가스를 실은 북한 화물열차가 22일 중국 단둥에서 조·중우의교를 통과해 신의주로 들어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이후 사흘간 폐쇄됐던 단둥~신의주 간 교역이 이날 정상화됐다. 단둥은 북·중 무역거래의 80% 이상이 이뤄지는 교역 중심지다. 단둥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이날 북한으로 향하는 화물차, 승합차 등으로 인해 단둥~신의주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인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는 교통량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단둥은 북·중 무역거래량의 80% 이상이 몰리는 북한의 대중국 최대 무역도시다.

단둥의 한 무역상은 “지난 19일 양국 무역 금지 이후 물류창고에 북으로 들어가기 위한 상품들이 쌓이면서 양국 무역파트너들 사이에 거래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면서 “북한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이러한 무역상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앞서 21일 밤 단둥 세관 공무원의 말을 인용,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일시적으로 폐쇄됐던 세관의 통관절차가 해제되면서 북한과 중국 단둥 간의 무역이 재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린성의 훈춘(琿春)과 투먼(圖門)에서도 22일 승합차와 트럭이 오가는 것이 목격됐다고 현지 주민들이 전했다.

북·중 간의 무역이 나흘 만에 재개된 것은 김 위원장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19~20일 운항이 중단됐던 압록강 관광 유람선은 21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단둥과 신의주를 통과하는 베이징~평양 국제열차는 김 위원장 사망과 상관없이 정상운행되고 있다.


단둥지역 조선족·화교·교민이 보는 북한


압록강을 두고 북한과 마주한 단둥(丹東) 사람들에게 강 건너의 ‘상사(喪事)’는 남의 일이 아니다. 특히 조선족이나 북한 화교, 북측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단둥의 한국 교민들에게 북한의 변화는 자신들의 생활, 생업과 직결된다. 단둥시 80만 인구 가운데 조선족은 1만5000명, 북한 화교는 8000여명, 한국 교민은 3000여명으로 추산된다.

강원도 회양이 고향인 박화성씨(75·가명)는 1955년 단둥에 정착한 이후 조선족으로는 드물게 시당위원회, 시청에서 고위직에 오를 정도로 성공했다. 지난 19일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그쪽 얘기는 워낙 조심스러워 집안에서 우리 양주(부부)끼리만 대화를 나눈다”며 말문을 뗐다.
박씨에게는 1960~1970년대 북한 사회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남아 있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단둥시 고위간부로 북한에 초청받았을 때 받은 ‘과분한 대접’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평양 고려호텔에서 묵으며 금강산과 고향땅을 돌아본 그는 “그때는 북한이 여기보다 훨씬 잘살았다”면서 “조국이 왜 이리 됐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한국이 북조선을 (흡수)통일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한국은 북조선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문제는 자기끼리 해결해야 한다”며 “조국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처럼만 되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둥의 한 호텔에서 만난 북한 화교 2세 리상수씨(31·가명)는 말을 아꼈다. 북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2000년대 초반 단둥에 넘어와 사업을 시작한 그는 자주 북한을 드나든다. 리씨는 “북한에서 화교학교에 다니던 시절 매년 (김 위원장의 생일인) 2월16일이면 당과류를 선물로 받았다”면서 “김 위원장 서거 소식을 듣고 조금은 슬펐다”고 말했다.
리씨는 북한에 사는 동안 북한 체제에 대해 “반경심(불만)을 갖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화교들의 생활수준이 높고 교육환경도 좋아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지도자의 세습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답했다. “북에서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위에서 그렇게 잡아놓으면 따라갈 수밖에 없으며 그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누가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반항하면 그 순간 밟히는 거죠. 거기에서 비판적인 생각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단둥에서 10년째 대북 임가공 봉제사업을 하는 교민 정강수씨(45)는 “지난해 5·24 조치의 최대 피해자는 단둥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인들”이라며 “김 위원장 사망으로 천안함, 연평도 사태 이후 냉각된 남북관계가 반전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