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경향신문 1면의 ‘내 인생의 책’에 눈길이 간다. 원고지 4장 남짓한 짧은 칼럼이지만, 명사들의 독서 스타일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특별히 흥미로울 때는 글쓴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경우다. 지난해 게재된 가수 최백호 편이 그랬다. 그는 ‘내 인생의 책’ 5권 가운데 2권을 만화책에 할애했다. <라이파이>(김산호), <파이브 스타 스토리스>(마모루 나가노)라는 만화책에 얽힌 그의 삶을 접하면서 그가 만화광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의 유려한 글 솜씨는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지난달 야구해설가 이만수 감독 편을 읽을 때는 ‘이게 헐크 이만수가 쓴 글인가’ 하고 놀랐다. <깨어나십시오>(앤소니 드 멜로),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파커 J 파머),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미생>(윤태호). 그가 내보인 ‘내 인생의 책’ 목록은 야구인이라기보다는 종교인이나 명상가의 그것이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새로운 이만수를 발견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지식인들의 스승’으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인류의 오래된 화두를 던지면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2500년 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진부하지 않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스승 플라톤과 나란히 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많은 고전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쉽게 읽히진 않는다. 그곳에 담긴 심오한 지적 탐구와 논리력을 따라가려면 꼼꼼한 독서가 요구된다. 이만수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하면서 읽다 보면 한 장을 넘길 때까지 한 시간이 넘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안에 새겨 있는 철학의 깊이를 따라가기는 힘들었다”고 책 읽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모든 것은 각자 고유한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잘 실현할 때 최선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람도 인간 고유한 기능인 이성이라는 능력을 잘 발휘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감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며 ‘인간의 모든 활동과 삶의 근원적인 목적은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공감하게 됐다고 한다.

이만수 감독의 독서 태도와 도서 목록을 보면, 그는 이미 독서인의 경지에 올라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책을 가까이할 뿐 아니라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그는 야구부가 있는 전국의 학교를 돌며 자신의 야구 재능을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에 야구단을 창단하고 물품을 지원하며 야구를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그는 또 재능 기부단체인 ‘이만수 열린 재단’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40년 넘게 야구인생을 살아온 이만수는 이제 재능기부자, 자선가로서 제2의 삶을 열어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책과 독서가 있다. 이만수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 윤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당초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헌정한 책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행복은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좋은 훈련이나 습관을 통해 행복을 지켜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만수는 그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야구해설가 이만수(오른쪽) (출처 : 경향DB)


우리 사회의 독서 풍토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고전 읽기’가 아닐까. 고전이야말로 지혜의 원천이면서 정신세계의 영원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해 이후 후마니타스연구소를 진행하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올봄 3개월간 개설한 ‘고전 읽기’ 강좌들은 폐강하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경향시민대학의 인문학 강좌는 참가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개는 그 원인으로 인문학 강좌 난립, 인터넷 및 영상물 범람 등 사회적 여건으로 돌린다. 나는 달리 생각한다. 사람은 본성상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지 ‘호모 쿵푸스(공부하는 인간)’는 아니다.

오죽했으면 공자가 “작은 마을이라도 반드시 나만큼 성실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이라고 말했을까. 공자의 호학(好學)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만수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만수 감독의 고전 읽기에 경의를 표한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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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