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근사(近思)와 소절(小節)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마 재벌 2세의 항공기 ‘땅콩 회항’, 재벌 총수 대학 이사장의 막말 e메일, 명문대 교수의 성추행 등의 사건을 접하면서였을 터인데, 엊그제 황교안 법무장관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 낱말이 화두처럼 다가왔다.

‘근사’는 <논어>의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한다)’에서 나온 말이다. 매사를 작고 가까운 것에서 원대한 것으로, 지엽에서 근본으로 살펴간다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근사’가 제대로 되어야 ‘유추(類推)’를 할 수 있다. 비근한 사례를 통해 다른 사물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은 ‘근사’를 생활 지침이나 학문 방법론으로 받아들였다. 송나라 학자 주희가 선배들의 저작 가운데 꼭 읽어야 할 글을 뽑아 엮고서 <근사록>이라 이름 붙이자, 퇴계 이황을 비롯한 조선의 학자들이 이를 앞다투어 읽으며 ‘가까이 생각하는 법’을 몸에 익혔다. ‘근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작은 일’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작은 일’이란 조선시대에는 집안 청소, 손님 접대, 노인 공경과 같은 일상의 일을 일컬었다. 옛사람들은 일상의 잗다란 일을 ‘소절(小節)’이라고 불렀고, 이를 배우는 공부를 ‘소학’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상에서 지켜야 할 소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기>에는 커다란 예절인 경례(經禮)가 300개이고, 자잘한 규범인 곡례(曲禮)는 3000가지나 된다고 적고 있다. 초학자 한문교과서인 <소학>이란 책에는 어린이들이 익혀야 할 예의범절과 행동규범이 주제별로 담겨 있다. 그것도 모자라 18세기 문인 이덕무 같은 이는 조선의 선비가 따라야 할 생활수칙을 모은 <사소절(士小節)>을 펴내기도 했다. <사소절>의 한 대목을 보자.

“살다 보면 창문 밑에서 책을 볼 때 바람이 책장을 흩날리거나, 부싯돌을 칠 때 부싯돌이 무디어 불이 잘 붙지 않을 때가 있다. 노비를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거나, 밤에 다니다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행장을 꾸려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의원을 맞이하는데 의원이 일부러 늦게 올 때, 해질 무렵 나루에 당도했는데 배가 바로 대기하지 않는 상황도 마주치게 된다. 이 같은 일을 당할 경우 화를 내어 화평한 기운을 손상해서는 안된다. 우선 마음을 안정시키고서 다시 상황에 알맞게 처리해야 한다.”

이덕무는 독서할 때, 부싯돌로 불을 붙일 때, 노비를 부를 때, 밤길을 걸을 때, 의원을 맞이할 때, 나루에 다다랐을 때 등 매사에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사소한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덕무는 이런 소절이 바로 선비가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큰 일에서 한계를 넘지 않으면 됐지, 작은 실수가 무슨 대수인가?”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덕무는 “사소한 일이라고 소홀히 대해선 안된다”며 “작은 일들 모두가 사람을 제대로 만드는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이덕무의 말처럼 삶이란 시시하고 하찮으며 가치 없는 일들의 축적이다. 그래서 좋은 삶이란 바로 소절을 살피며 조심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토록 많은 규범과 규칙, 소절을 어떻게 다 지켜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수천을 헤아리는 작은 예절과 규칙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지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모든일을 공경과 두려움으로 상대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작은 규칙과 규범이 몸에 체화될 때 비로소 개인의 인격과 품성이 형성된다. 그리고 사회의 공공윤리는 이러한 품성들이 확산될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 개인의 인격과 품성을 따져보려면 일상생활 속의 ‘소절’을 관찰하면 된다.

일부 불교 언론들이 황 지명자 사퇴를 촉구하는 불교 단체의 주장을 담은 기사들을 인터넷 홈페이지 주요 뉴스로 싣고 있다. (출처 : 경향DB)


옛날의 소절을 요즘식으로 말하면 교양 있는 언행, 법률 준수, 국민의 의무 이행 등이 해당할 것이다. 황 총리 지명자는 “나라의 기본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에 대한 포부를 피력하는 것은 총리 후보자답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채운 ‘소절’ 하나하나는 결코 총리라는 대절(大節·큰 직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로펌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그는 전관예우를 받으며 17개월 동안 16억원의 수임료를 벌어들였다. 법무장관 청문회에서는 증여세 탈루, 병역 면제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산고검장 시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투신사건’으로 표현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대중씨’라고 지칭하는 등 고위공직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보이기도 했다. 소절도 감당하지 못한 황 지명자가 총리라는 중책을 맡는다는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아니 옛 선비들이 고이 간직했던 ‘근사’와 ‘소절’의 덕목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