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두 권의 신간을 읽었다. 하나는 예술원 회장인 유종호 교수가 쓴 <문학은 끝나는가?>(세창출판사)이고, 다른 하나는 신영복 교수의 <담론>(돌베개)이다. 유종호 교수는 오늘날의 문학을 ‘위기’라고 진단하고 그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으며, 위기의 문학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담론>은 신영복 교수가 10년 전에 펴낸 <강의>의 속편이다. 그는 또다시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등의 중국 고전을 읽어가며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두 원로 인문학자는 각각 전공이 영문학과 동양 인문학으로 다르고, 가치지향에서는 ‘엘리트 옹호’와 ‘민중성 강조’로 갈리는 등 여러 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합쳐지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고전을 옹호한다는 점이다.

두 인문학자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은 ‘고전 읽기’이다. 유종호 교수는 “고전적 독서인은 시간과 속도를 괘념하지 않고 책에 열중하면서 정독함으로써 그야말로 세계를 무화(無化)시켰다”며 전통적인 독서양식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 보였다. 이와 함께 위기에 처한 문학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원전 읽기’를 강조한다. 유 교수가 원전을 강조하는 것은 고전 입문서나 연구서와 같은 2차문서가 범람하고 있는 현실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2차문서에는 고전과 같은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영복 교수 역시 고전 공부는 원전 텍스트 읽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합니다.” ‘텍스트를 읽으며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脫文脈)의 과정.’ 신 교수가 말하는 고전 읽기의 요체다.

책을 읽으며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전 읽기’ 강좌를 되돌아봤다. 지난 3월 개설한 <논어> <장자> <사기> <국가> 강좌가 어느덧 2개월이 되어간다. 낮시간에 12주간의 긴 강좌가 제대로 열릴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현재로선 ‘순항 중’이다. 강좌당 평균 수강생 이 13명이니 결코 많은 수는 아니다. <논어>는 주자의 주석본을 텍스트로 삼았지만, 경문(經文)만을 한문으로 읽고 주석은 강의로 대체하고 있다. 원문이 방대한 <장자>와 <사기>는 강사가 주제를 뽑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강좌 이름으로 ‘고전 읽기’를 내걸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텍스트 읽기’라고 할 수 없다.

한 외국인 강사의 인문학 특강 (출처 : 경향DB)


강좌 가운데 수강생이 텍스트 읽기에 참여하는 수업은 플라톤의 <국가>다. 강사를 포함해 9명밖에 참여하지 않는 미니 강좌다. 그러나 수강생의 공부 열정은 다른 고전 강좌를 뛰어넘는다. <국가> 강의를 맡은 김주일 박사가 처음 수강생들의 발제와 토론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회의적이었다. 난해하다고 소문난 플라톤 철학서, 그것도 600쪽이나 되는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을까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수강생이 자진해 발제를 하고, 다른 수강생들이 번차로 뒤를 따르면서 강의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번역본이지만 일반 시민들이 묵직한 정치철학서를 읽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수강생들은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 흥미로워하며 지적인 감동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4쪽도 채 되지 않는 ‘선분(線分)의 비유’ 대목에서는 읽는 데만 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장은선씨는 “어렵다고 생각해 <국가>를 펴보지 않다가 이번에 읽게 됐다”며 “플라톤 글은 함의가 깊어 생각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 무역업을 하는 장효성 대표는 “30쪽 분량의 텍스트를 읽고 발제하느라 일요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며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대화 현장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고전이란 무엇일까. 장효성 대표는 “옛 현인들과의 대화”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전은 ‘오래된 미래’이다. 장은선씨는 “미뤄놓은 숙제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누구도 읽지 않는 게 고전’이라는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정의와 부합하는 말이다. 고전은 녹록한 책이 아니다. 나는 <국가>를 읽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생각났다. 그렇다. 고전 읽기는 바다로 나가 생선을 잡아 요리하는 일이다. 바닷바람을 쐬고 때로는 파도와 싸워야 한다. 그 어려움 속에서 잡은 물고기가 고전이다. 고전은 MSG가 아니다. 다시다 같은 조미료에는 바다의 정취도, 팔딱이는 생선의 맛도 없다. 생선의 제맛을 보려면 바다로 가야 하듯, 고전의 참맛을 보려면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