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주제는 분노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에 대한 묘사보다는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분노에 찬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원수를 갚고자 적장 헥토르를 찌르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마차에 매어달고 달리는 대목은 분노의 극치를 보여준다. (영화 <트로이 목마>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로 전장을 누비던 아킬레우스가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아달라며 애원하는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무스 앞에서 눈물을 쏟아낸다. 이어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으며 화해하는 것으로 작품은 대단원을 맺는다. <일리아스>는 분노로 시작해 슬픔으로 끝이 난다. 그러면서 슬픔이 분노보다 강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분노와 슬픔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감정이다. 분노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폭발성이 높아 힘으로 전화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 변혁기에 시민들의 결집된 분노는 혁명의 에너지로 폭발하곤 한다. 반면 슬픔은 밖으로 향하기보다는 안으로 파고든다. 감정을 누르고 다지며 두꺼운 침전물을 남긴다. 분노가 일시적이고 단속적이라면 슬픔은 끊이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일리아스>의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슬픔의 힘이 분노보다 강하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그렇다. 지난해 4월16일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도하며 우리는 분노했다. 생때같은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 참담해 했고 정부의 무능함에 치를 떨었다. 유가족의 애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대통령의 처사를 보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분노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와 농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는 엷어졌다. 치솟던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언론에서 세월호 보도가 점점 사라지면서 기억의 힘도 약화되었다. 그러면서 모두들 먹고사는 일을 구실 삼아 일상으로 돌아갔다. 많은 서울 시민들에게 1년간 지켜온 광화문의 세월호 농성장은 또 하나의 도시 풍경으로 비칠 뿐이다.

오래 지속된 것은 슬픔이었다. 유족들은 먼저 보낸 아들, 딸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들 때에도 아른거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팽목항에는 실종자의 시신을 찾지 못해 바다를 바라보고 오열하는 가족도 있다. 단원고 희생자의 유가족을 인터뷰해 실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살아있는 자의 슬픔이 얼마나 골수에 맺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慘慽)의 슬픔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도 없고, 국가도 없다는 국민으로서의 상실감이 슬픔의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단원고 희생자 호성이 엄마는 청와대 앞에서 ‘살려주세요’하고 애원하는데, 대통령이 슬쩍 보더니 그냥 가버리더라면서 ‘대한민국엔 대통령이 없구나’하는 허탈감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소연이 아빠는 딸을 잃은 절망감에 죽음의 문턱을 밟겠다고 몸부림치다 여러 번 119구급차 신세를 졌단다. 그러나 호메로스가 간파했듯이 슬픔은 힘이다. 1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은 오열, 절망, 허탈,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나고 있다.

분노가 슬픔에 미치지 못하지만, 억제되어야 할 일시적 감정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서양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일리아스>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시대의 서사시나 비극 가운데 많은 작품들이 분노를 내세운 것은 분노가 불공정, 부도덕, 부정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손병석의 <고대 희랍·로마의 분노론>). ‘분노의 화신’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정의에 대한 갈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분노를 어떻게 발산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호메로스 이후 많은 작가들이 문학, 음악, 미술에서 분노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분노의 힘’에 대한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가 지나치면 악으로 흐를 수 있지만, 정당한 분노는 사람을 명예롭게 하고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

조계종 노동위원회 소속 스님과 불교단체 회원, 시민 등 30여명이 2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다시 4월을 맞는다. 세월호 사건 발생 1년이 되어가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구조를 둘러싼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선박은 아직 바닷속에 잠겨 있다. 천신만고 끝에 태어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 여당의 방해 공작으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4월을 맞아 우리는 슬픈 조사를 읽는 것으로 끝나선 안된다. 슬픔과 함께 다시 분노를 소환해야 한다.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 정의로운 분노는 필요하다. 아킬레우스가 거친 분노로 통치자 아가멤논에게 저항했듯이, 세월호의 진실을 덮으려는 불의에 맞서야 한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