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세대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은 최초의 미학자이기도 하다. 대학 동기생인 국어학자 이희승의 회고에 따르면, 고유섭은 경성제국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조선탑파의 연구> <고려청자>와 같은 저술에 앞서 여러 편의 미학 관련 글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개성박물관으로 부임하고 미술사와 고고학 분야에 파고들면서 미학은 뒷전으로 미뤄졌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그의 미학 연구가 더 진전되었을지도 모른다.

해방 후 국립종합대학으로 문을 연 서울대학교는 미학과를 설치해 연구의 불씨를 이어갔다. 그러나 교수진이 열악한 데다 소속마저 문리과대학과 예술대학을 오가면서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철학과로 통합되어 오던 미학과가 정식학과로 독립한 것은 1984년에 이르러서다. 이런 속에서 미학이 제대로 연구되거나 전수되었을 리 없다. 이 학과 출신으로 김지하, 유홍준, 김홍남, 황지우, 진중권 등 유명 인사는 많지만, 미학의 권위자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미학 연구의 척박함은 출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미학 오디세이> <현대미학강의> <헤겔의 미학강의> 등 미학서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 서양 미학 해설서이거나 번역서이다. 국내 학자가 쓴 우리의 미학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장파), <이중톈의 미학강의>(이중톈), <미의 역정>(리쩌허우) 등 중국 학자들이 자국의 미학을 정리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한국 사회에서 미학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난해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식의 부족이 크다. 물질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예술이 가진 자들의 소비물이나 과시품으로 전락한 것도 미학에 대한 반감을 키웠을 수 있다. 현재 미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서울대, 홍익대에 불과하다. 대학이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미학 연구의 길은 더 험난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심미주의 선언'이라는 미학 서적을 발간한 문광훈 교수 (출처 : 경향DB)


이런 반미학적 풍토 속에서 독문학자 문광훈이 우리 미학 입문서 <심미주의 선언>을 펴내며 ‘예술 체험을 통해 아름다운 사회를 찾자’고 절규하고 있다.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뜬금없는 ‘아름다움 타령’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미학을 전공으로 택한 고유섭만큼이나 이채롭다. <심미주의 선언>을 읽어보면 그의 주장이 공허한 외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유섭의 미학 연구가 미술사로 이어졌다면, 문광훈은 독문학에서 미학으로 옮아가고 있다. 그는 플라톤, 실러, 푸코 등 서구의 미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심미주의 선언>을 미학 이론서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기실 그의 작업은 매우 개인적이며, 체험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성찰해 가는가를 들려준다.

심미주의란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념을 말한다. 그러나 문광훈은 19세기 말 유미주의와 같은 서양 사조의 되풀이가 아닌, 아름다움의 힘을 찾아가는 심미주의를 제안한다. 그에게 심미(審美)는 ‘아름다움을 좇는 것’이 아닌 ‘아름다움에 대해 심사하고 판단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의 미의 역정은 궁극적으로 ‘현실의 파편과 대결하고 삶의 모순과 역설을 직시하는’ 아름다움으로 귀착된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심사와 판단의 준거는 ‘지금 이곳의 삶’이다. 그래서 그의 심미주의는 개인적, 성찰적, 실존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문제는 사적인 예술체험을 어떻게 정치적 미학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인데, 문광훈은 개인의 주체적인 성찰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교육과 교양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문광훈의 <심미주의 선언>은 자본과 권력의 천박함, 통속성, 반교양주의로 가득찬 우리 사회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개인의 예술체험이 어떻게 정치 행위로 연결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는데, 시인 김수영의 글을 읽다가 퍼뜩 깨달았다. 김수영이 사회 평론을 쓰기 위해 정치색 짙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았지만, 정작 글을 쓰게 한 것은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였다는 내용의 산문이었다. 문광훈과 김수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미적 체험, 그것이다. 김수영 글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다시 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마루의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조용한 물 끓는 소리다. 갓난애기의 숨소리보다 약한 이 노랫소리가 <대통령 각하>와 <25시>의 거수(巨獸) 같은 현대의 제악(諸惡)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지만, 못 거꾸러뜨린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三冬有感’)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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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