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나 <남한산성>과 같은 역사 이야기를 기대하고 김훈의 소설 <강산무진>을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강산무진>이 조선의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에서 모티브를 취했지만, 역사소설은 아니다. 불안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조명한 작품집이다. 표제작 ‘강산무진’은 간암 선고를 받은 대기업 상무가 회사를 사직하고 요양을 위해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강산무진도’는 소설의 줄거리와 상관이 없다. 주인공이 우연히 박물관에 들렀다가 특이하게 긴 그림을 보게 된다는 에피소드로 들어 있을 뿐이다. 이인문의 얘기는 한 줄도 없다. 그렇다면 ‘강산무진’을 책의 표제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유한성과 끝없이 이어지는 산하의 영원성을 대비시키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두 주일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잇따라 찾았다. 산수화특별전에 나온 ‘강산무진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주 처음 갔을 때에는 그림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작품은 비좁은 전시장의 끄트머리에 옹색하게 진열돼 있었다. 그 때문인지 ‘옛 그림 중 가장 길다’(8m56×44.1㎝)는 장대함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명도 어두워 작품의 세부를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 관람 이후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읽었다. 그제서야 김홍도, 신윤복, 정선에 가려 있던 이인문이 들어왔다. 그는 B급 작가가 아니었다. ‘신필(神筆)’로 소문난 규장각 소속 화원이었다. 동갑내기 친구 김홍도와는 자웅을 겨뤘다. 다른 점은 김홍도가 산수화, 풍속화, 인물화 등을 섭렵한 데 반해 이인문은 평생 산수화에 매달렸다는 사실이다. 산수화 전문 화원답게 현재 전하는 산수화가 수십 점에 달한다. 이 중에는 80세에 그린 작품도 들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번 주초 두 번째로 관람할 때에는 시간을 갖고 찬찬히 읽어나갔다. 그제서야 무진한 강산이 눈에 들어왔다. 긴 여백으로 시작하는 그림은 언덕과 소나무 동산, 강물을 이어가며 유장하게 펼쳐진다. 산 아래 민가는 평온하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여유롭다. 이러한 풍경들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그림 끝자락에서는 여백 속으로 스러져간다. 산과 강,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우러짐은 유가의 대동사회, 바로 그것이다. ‘강산무진도’에는 이처럼 대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고 싶은 인간의 소망이 투영돼 있다.

이인문의 <강산무진>의 한 부분 (출처 : 경향DB)


‘강산무진도’는 이인문이 칠순을 훌쩍 넘긴 뒤 그린 만년작이다. 그러나 노인의 그림으로 보이지 않는다. 8m 넘게 끌고가는 스케일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나무와 바위산을 그려낸 붓질에서는 강건하면서도 절제된 힘이 느껴진다. 오주석의 말을 빌리자면 “천변만화하는 산수의 형태와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준법(표현법)”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도 적지 않다. 그림의 시작과 끝부분에 찍혀 있는 장서인들로 봐 추사 김정희가 이 그림을 소장했음이 분명한데, 어떻게 추사에게 들어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추사의 글씨 ‘谿山無盡(계산무진)’이 ‘강산무진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심사정의 두루마리 그림 ‘촉잔도권’(8m18×58㎝)과의 영향 관계를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계산무진’과 ‘촉잔도권’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간송문화전에 전시 중이다.)

중국에는 ‘청명상하도’(5m25.7×25.5㎝)라는 그림이 있다. 북송의 장택단이라는 화가가 수도 개봉의 주변 풍경을 그린 풍속화로, 중국인들은 이를 최고의 국보로 떠받들고 있다. 이 그림이 유명한 것은 인물, 민가, 가게, 배, 마차, 동물 등 1000년 전의 사회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청명상하도’를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관광지나 공항 서점에서 외국인들에게 판매할 정도로 이 그림에 갖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림의 배경이 된 개봉시는 ‘청명상하원’이라는 테마공원을 조성해 외국인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때에는 디지털영상으로 만든 3차원의 ‘청명상하도’를 전시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무한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강산무진도’는 한국판 ‘청명상하도’라 할 수 있다. 이제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김정희의 ‘세한도’와 나란히 놓아도 될 듯하다. 문제는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가느냐이다.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문화콘텐츠로 만들어 전통을 계승, 확산시키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강산은 무진하고 우리 앞에 놓인 과제도 끝이 없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조운찬의 들숨날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일 강좌를 진행하며  (0) 2014.10.03
반계 선생의 우물  (0) 2014.09.05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0) 2014.08.08
왜 후마니타스인가  (0) 2014.07.11
죽음에 대한 단상  (0) 2014.06.13
다산이 자식의 추도문을 지은 까닭  (0) 2014.05.16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