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문을 연 후마니타스연구소장을 맡은 뒤 이구동성으로 받은 질문은 ‘후마니타스연구소가 뭘 하는 곳이냐’는 것이었다. 어느 대학 교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한 지인은 출판사와 공동 사업을 계획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후마니타스’라는 말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이나 출판사를 특정하는 용어로 비칠 뿐 널리 쓰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며칠 전 저녁 모임에서는 선배로부터 거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명함을 건네자마자 그는 ‘성명학’을 거론하며 ‘후마니타스’에 대해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왜 언론사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외래어를 사용하는가”, “이는 불친절할 뿐 아니라 현학적이고 오만하기까지 한 작명이다”. 그의 언성이 높아진 것은 술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대학 교수인 그가 ‘후마니타스’의 뜻을 모를 리 없다. 우리말 사랑이 남다른 선배가 제안한 이름은 ‘인문학연구소’, ‘인문연구소’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후마니타스는 하나의 번역어로 치환하기 어렵다. 그것은 2000여년의 서양지성 전통에서 나온 개념으로 함의가 다양하고 깊기 때문이다. 흔히 언어의 특성으로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꼽는데, 후마니타스에는 장구한 ‘언어의 역사성’이 내포돼 있다.

클라우스 헬트의 <지중해 철학 기행>에는 ‘후마니타스’의 변천 과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그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기원전 1세기경의 로마 철학자 키케로이다. ‘후마니타스’는 라틴어이지만, 말의 뿌리는 로마가 아니라 그리스이다. 키케로는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인간 탐구’ 전통을 계승해 ‘후마니타스’라는 개념을 끄집어냈다. 수사학의 대가였던 그는 후마니타스를 수사학의 핵심 개념으로 내세우며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인본주의 전통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후 후마니타스는 인본주의, 인문학 등의 의미로 확대됐다.

출판사가 직영해 북카페 원조로 불리는 서울 합정동 후마니타스 ‘책다방’ (출처 : 경향DB)

서양 철학전통에서 후마니타스가 재발견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다. 르네상스 초기인 14세기 이탈리아인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인문주의를 연구하며, 이를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후마니타스 연구)’라고 불렀다. 후마니타스가 재소환된 것이다.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 운동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피렌체 도시공화국의 재상 콜루치오 살루타티였는데, 유럽 문예부흥을 얘기할 때 로렌초 데 메디치와 함께 항상 거론되는 사람이다. 이후 후마니타스는 19~20세기 독일의 ‘후마니스무스(인문주의)’ 교육 논쟁으로 서양지성사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후마니타스가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이다. 신자유주의 유입으로 물신주의, 무한경쟁, 효용가치, 인명경시 등 반인간주의가 확산되면서 그 대항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대학 밖의 ‘인문학 열풍’은 후마니타스의 중요성을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후마니타스는 인간성, 인간애, 인문학, 인문과학, 인문주의, 인문교양 등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어려움을 들어 그냥 외래어 ‘후마니타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 언어사대주의라고 비판한다면 감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양하게 번역되는 언어를 하나의 뜻으로 한정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나에게 후마니타스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공자는 “사람이 다쳤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당시 사람보다 비싼 값으로 거래되던 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우물가로 다가가는 어린아이를 구제하려고 달려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는 맹자의 말이다. 맹자의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살았던 플라톤은 ‘인간이 어떻게 존중되어야 하나’라는 화두와 씨름하고 있었다. 성인, 대현들이 궁극으로 파고든 것은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관계망이었다.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지향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알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이다. 선원들이 승객들을 팽개치고 세월호를 뛰쳐나온 것은 그들에게 악마의 본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면책하고자 한 처사는 법적으로 문책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눈곱만치도 없는 자들이다. 후마니타스의 부재가 세월호 참사를 부른 것이다. 연구소가 후마니타스를 앞세운 것은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자하는 뜻이다. 인문학의 열기에 편승하거나 우아한 이름으로 치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조운찬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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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