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전북 임실이다. 그러나 고향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연고주의가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크게 말하면 고향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속도로·철도복선화 공사로 옛 모습을 잃은 시골마을을 생각하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다. 그래서 주위의 고향 예찬은 물론 비판에도 무심한 편이다. 그랬던 나도 지난해 민선 임실군수 4명이 잇따라 비리에 연루돼 중도에 낙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분노가 치밀었다. 뉴스를 찾아 읽고, 임실이라는 곳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때 접한 책이 <운수지(雲水誌)>였다.

<운수지>는 1675년 간행된 임실군지이다. 국내 최초의 읍지인 함안의 <함주지>(1587년)를 본떠 만든 이 책은 안동의 <영가지>, 서산의 <호산록>, 순천의 <승평지>, 진주의 <진양지> 등과 함께 오래된 군지로 꼽힌다(임실문화원은 2012년 <운수지> 번역본을 출간했다). 이를 통해 내 고향 임실이 한때 ‘운수’로 불렸으며, 어느 고을보다도 오랜 역사와 문화재, 풍속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면서 잇속을 챙기다 중도하차한 오늘날의 군수들과 대비되는 옛날 수령들의 애민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운수지>에 관심을 가진 것은 <망우동지(忘憂洞誌)> 때문일지도 모른다. <망우동지>는 조선 영조 때 간행된 서울 망우리의 지리서이다. 10여년 전 서울역사박물관이 <주자동지>와 함께 번역해 <망우동지·주자동지>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나는 이 책을 망우리 주민들과 함께 몇 차례에 걸쳐 읽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은 ‘양원리 이성계 우물’ 등 지역 문화재 보존의 기치를 내걸고 사단법인 중랑문화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망우동지>에는 ‘우리나라에서 한양만큼 산수가 빼어난 곳이 없고, 한양 인근에서 망우리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는 구절이 있다. 역사지리지의 상투적 표현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해당 주민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그것은 임실사람들이 ‘물산이 풍부해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物産之豊 眞天府之地也)’라는 <운수지>의 평가를 기쁘게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1760년 간행된 '망우동지'에 나온 양원마을 일대. (출처 :경향DB)


지난달 간송미술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어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을 찾았다. 얘기가 읍지에 미쳤을 때 선생은 <고덕면지(古德面誌)>를 썼다면서 한 권을 주었다. 선생의 고향은 충남 예산군 고덕면이다. “부처님도 생신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가비라성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했다 하는데, 나를 낳아준 고향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서….” 고향의 역사를 쓴 선생의 변이었다. 역사 학자의 마지막 꿈은 ‘한국통사’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사의 석학인 최 선생은 일국의 역사 대신 작은 고을의 역사를 썼으니 ‘소 잡는 칼로 닭 잡은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강진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은 <만덕사지>를 쓰고 ‘강진해안지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뒷날 우리나라 역사지리지인 <아방강역고>를 편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처럼 다산의 마을에 대한 관심은 지역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와 세상을 보는 밑거름이 된다.

1995년 4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면서 닻을 올린 지방자치제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성년이 된 지방자치제는 그간 선거, 정책개발, 주민교육, 사회복지 등에서 나름대로 뿌리는 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으로 ‘마을 역사 쓰기’를 제안한다.

<함주지>나 <영가지>에서 보듯, 우리는 오랜 지역사 쓰기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영향을 받아 시·군지를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운수지>나 <망우동지>처럼 옛날의 군·읍지를 번역하거나 예전의 자료에 행정기구 변천, 경제·산업 통계, 출향인사 등을 덧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신도시 건설 등 개발과 토건사업으로 대규모 토지가 수용되고 마을이 사라지면서 읍·면·리지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마을의 역사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집, 향토지뿐 아니라 금석문, 현판, 사진 등 지역의 자료를 수집·정리해야 한다. 또 지역 주민의 경험 채록 등 구술사 정리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마을을 ‘발견’해야 한다. 지역답사나 지역사 공부모임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역 문화계 인사의 살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일부 지역의 문화원의 환골탈태도 필요하다. 오는 6월이면 지방의원과 단체장의 새 진용이 들어선다. 성년의 지방자치제는 마을의 역사 정리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조운찬 문화에디터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