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犬설화고장의 보신탕집

[경향신문] 2000-07-06 2545판 문화 기획,연재 1358

 

'너의 아픔 곁에서/너의 아픔 속속들이 적시지 못할 바에는/, 서둘러 떠날란다//오수발 서울행 새벽 기차 기적소리'('오수역에서' 전문)안도현의 시를 들먹이지 않아도 오수는 교통 요충지이다. 지금은 쇠락해져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갑오경장 때까지만 해도 남원.운봉.구례.순천 등 전라도 동쪽의 역참들이 모두 오수 도찰방의 지휘를 받을 정도로 그곳의 위세는 대단했다.

오늘날 이곳이 유명한 것은 고을 이름 때문이다. 고려 문인 최자는 '보한집'에서 '오수(獒樹)'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 사람이다. 어느날 외출을 하였는데 기르던 개도 뒤따랐다. 주인은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하여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판에 불이 나 번지고 있었다. 개는 곧 냇물에서 몸을 적셔 주인을 불길로부터 구하긴 했으나 불이 꺼졌을 때에는 기운이 다해 그만 죽고 말았다. 주인은 개를 장사지낸 뒤 지팡이를 꽂아 무덤을 표시했다. 뒷날 이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나 이 고장을 오수라고 했다"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이야기는 의견(義犬) 설화의 전범으로 여겨질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개가 하필 '()'일까. 일반적으로 개를 가리킬 때에는 '()'이라 하고 작은 개는 '()'로 칭하기도 한다.

()가 문헌에 처음 보인 것은 '서경'이다. 이 책에는 서쪽 오랑캐 나라에서 큰 개()를 바치자 임금이 이를 경계하여 '여오(旅獒)'편을 지었다고 쓰여 있다. 송나라 학자 채침은 '오란 키가 넉자인 개'라고 주석을 달았다. '설문해자''개가 사람의 마음을 알아 부릴 만하다'고 풀었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바둑이에게 명하는 글'(命斑獒文)에서 "너는 비록 천한 짐승이지만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았으니 어떤 동물이 너의 영특함을 따르겠느냐"고 바둑이를 예찬하고 있다.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오견(獒犬)은 몽골에서 나는데, 세상에서는 '호백(胡白)'이라고 부르며 작은 것은 '발바리'라고 한다. 이 개는 배가 고파도 불결한 음식을 먹지 않고 사람에게 편지를 전해주기도 한다"고 썼다. 문헌상의 오()는 모두 범상한 개가 아니다. 오수의 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진돗개나 풍산개의 일종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아이로니컬한 일은 매년 '의견제'를 열어 주인을 구한 개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 이곳에 보신탕집이 성업중이라는 사실이다. 몇십년 동안 대를 이어온 이 집은 지난해 전주에 분점을 차렸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의견비에서 5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웬 보신탕집"이라며 반대 여론도 적지 않으나 이 또한 오수의 명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의견제가 열리는 날에는 이 식당도 문을 닫는다고 한다. 조운찬 기자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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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