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회가 인문학을 원하는가?

 

조운찬 (경향신문 문화에디터)

 

 

1.대중인문학은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한가

 

 철학자 강신주가 이달 초 한 공중파 방송의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그는 취직, 결혼, 사랑, 공부 등 방청객들이 던지는 갖가지 질문과 고민에 인문학적 지식과 세련된 화술로 상담하며 방청석과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한 방청객은 자신의 문제를 상담하는 강신주에게 감동을 받은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음날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서는 강신주의 저서가 하루만에 2000여권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후 인터넷과 신문 지상에서는 강신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그것은 인문학 서적이나 강좌를 통해 대중들과 만나왔던 강신주가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인문학 상담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하나는 그 상담의 내용과 방식이 여느 인문학자의 그것과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한 문화평론가는 강신주의 대중 인문학 강연이나 상담이 인문학 공부의 외피를 쓴 힐링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문학이 한국인들의 불안한 삶에 편승해 멘토링, 힐링, 자기계발 담론의 시장에서 한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문강형준, ‘대중인문학은 무엇을 이름인가’. <한겨레> 201428) 또 다른 문화평론가는 강신주는 상대가 누구라도 즉석에서 해답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라며 그에게 이제 철학은 권력이 됐다고 꼬집었다. (권경우, ‘철학자의 자리’. <교수신문> 2014210) 두 평론가는 일제히 인문학이 힐링과 손을 잡으면서 성령 부흥사와 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대중인문학을 비판했다. 인터넷에도 비판글이 이어졌다. 논리도 깊이도 없어 철학자로 보기 어렵다는 혹평도 있었다. 대중들을 현혹시킬 말뿐인 인문학자가 아니냐며 자기계발서 쓰는 저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강신주 비판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한 독자는 사회적 구조와 대중의 불안 심리를 분석하는 것 역시 인문학의 역할인데 지금까지의 인문학은 공부만을 강조했지 과는 유리돼 있었다면서 강신주야말로 철학자의 언어를 우리 삶 가까이에 쏟아부어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철학자라고 적극 옹호했다. (정혁, ‘강신주의 대중인문학은 무엇인가’. <한겨레> 2014214)

 논란이 이어지자 강신주가 일간지에 인터뷰를 자처해 철학상담 등 자신의 인문학 강좌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철학자나 인문학자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보여주고 그들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인문학 강연이나 철학상담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나 공자와 제자들간의 대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신의 상담은 피상담인에게 체제와 맞서는 주체로 서라는 것으로 자기계발이나 힐링담론과는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경향신문> 2014215)

 발표문 첫머리에 강신주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강신주를 오늘날 한국 대중인문학의 아이콘이라 불러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흔히 강신주는 대학 강단보다는 강연과 저술을 통해 일반 시민과 소통하는 거리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다. 그가 하는 강좌는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청중이 몰린다. 수백명은 예사이고, 대형 강연장인 경우에는 1000명 이상이 운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신주는 최근 지금까지 20여권을 책을 냈는데, 상당수가 1만여권 이상 팔렸다. 가히 강신주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신주는 이제 거리의 철학자를 뛰어넘어 아이돌 철학자로 불린다. ‘인문학 전도사강신주는 과연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하고 있는가.

 

 

2. 대중 인문학 유행의 허실

 

강신주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은 크게 유행하고 있다. 신문, 방송 등 매체는 매일 인문학을 얘기한다. 웬만한 지방자치단체, 대학, 연구소, 언론사, 기업체, NGO 등에서는 인문학을 내건 강좌를 내고 있다. 기업체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재를 뽑겠다면서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시민들의 인문학 진흥을 위해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서울시는 본청에 시민청 시민대학을 개설하는 것을 비롯해 시립대, 성공회대, 경희대 등에 지원해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2012년부터 경향시민대학을 개설해 인문, 예술, 사회과학 등에 대한 강좌를 1년에 4차례씩 열고 있다.

자생적인 인문학 공부모임도 최근 크게 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문학공동체는 수유 너머철학아카데미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100여개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는 대안연구공동체’, ‘길담서원’, ‘푸른역사 아카데미’,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 ‘다중지성의 정원’, ‘문탁 네트워크’, ‘세미나 네트워크 세움’, ‘문지문화원 사이등이 거론된다.

인문학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출판계이다. 교보문고 인터넷사이트에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인문학타이틀을 단 교양서, 자기계발서, 경영서의 이름들이 줄줄이 뜬다.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청춘의 인문학>,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인문학 명강>, <인문학은 밥이다>, <고사성어 인문학 강의>,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미술관 옆 인문학>, <거리의 인문학>,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 <인문학의 즐거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레시피>, <인문학은 행복한 놀이다>, <인문학 주식시장을 이기다>, <숲의 인문학>, <돈의 인문학>, <밤의 인문학>, <담쟁이 인문학>, <모든 순간의 인문학>. 헤아리기도 숨이 가쁠 정도다. ‘인문학은 이제 출판계의 중요한 코드의 하나가 됐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문학공동체, 수많은 인문학서적들, 무성한 인문학 담론 등으로 본다면 우리사회에 인문학은 유행을 넘어 열풍이라고 할만하다. 그렇다면 인문학 유행에 걸맞게 그 내용도 채워지고 있는가.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문제를 묻고 답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중인문학이 이러한 인문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지는 의문이다. 일부 인문학 강좌들은 문학, 철학, 역사, 예술사 등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인 삶을 고양시키는 인문학 본령에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진 찍는 법, 허브 키우는 법 등 백화점 문화강좌에 어울릴 법한 강좌를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내놓고 있다. 이러한 실용을 강조하는 인문학은 출판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앞서 인문학 관련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제목만 보면 인문학은 만병통치학이다. 인문학을 하면 돈도 되고, 밥도 되고, 떡도 된다는 것이다. 아이폰의 혁신적 발상이 인문학에서 나왔다는 스티브 잡스로 표상되는 아이폰 인문학돈 되는 인문학의 표상이다. 일부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하는 ‘CEO 인문학강좌는 아이폰 인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무성한 인문학 강좌들도 외화내빈인 경우가 많다. 인문학공동체 가운데 비교적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안연구공동체의 경우 1주일간 수강생이 400명을 육박한다. 강좌 및 세미나 수는 50여개 정도로 강좌당 8명 꼴이다. 강사진은 국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문학자가 20여 명, 작가, 시인, 건축가, 번역가 등 전문가가 10여명이다. 그러나 다른 학습 공동체의 경우 수강생이 적어 강사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거나 준비된 강좌를 폐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강사나 공동체 운영자의 재능기부와 헌신으로 인문학 강좌들이 이뤄지는 곳도 많다. 올해로 창립 6주년을 맞는 길담서원은 치솟는 건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올해 초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만 했다.

인문학 출판계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지난해 7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슬라보예 지젝의 철학서 <헤겔 레스토랑><라캉 카페>가 출간 열흘만에 각각 1000권 이상이 팔려 화제가 됐다. 순수 인문학 서적이 이렇게 팔린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출판계에서는 인문학 서적이 5백부만 팔려도 잘 나간다고들 한다. 10년전만 해도 인문서는 초판에 1500~2000부를 발간했으나 지금은 500부나 700부를 찍는 일이 허다하다.

박성준 길담서원 대표는 우리사회에서 인문학 유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현재의 대중 인문학은 깊은 연구나 성찰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호기심이나 지적 유희 수준에서 소비되는 단계라고 보았다. 현재의 인문학 생산과 소비가 명품이 백화점에서 거래되는 구조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다는 인문학은 기실 실용 인문학이다. 실용 인문학은 인문학의 외형을 하고 있으나 넓은 의미에서 자기 계발 공부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용 인문학은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삶과 환경에 본질적인 질문을 막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인문학도 필요하지만, 지나친 실용의 강조는 결국 인문학의 본령을 해친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인문학, 기만과 억압과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에 협력과 조화와 나눔을 생각하는 인문학이다. 이러한 인문학은 아직 미미하다. 인문학 유행 속에서 우리가 고민해야할 지점은 바로 인문학의 본질을 찾는 일일 것이다.

 

 

3. 인문학 갈증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 사회는 이제 모두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게 아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데 급급하지만, 이게 충족되면 정신적 허기를 느끼게 된다. 인문학에 대한 갈등은 이러한 정신의 허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여유있는 계층은 누릴 게 너무 많아 정신의 허기를 달래는 인문학에 관심이 없다. 인문학을 생각하는 이들은 중간층이다. 물질적으로 풍부하지도, 쪼들리지도 않는 그들은 물질이 아닌 정신의 여유를 추구하려 한다.

한국 사회가 인문학에 눈 뜨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고, 결정적인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위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서 인문학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대학의 지식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두뇌한국(BK)21’ 사업을 가동시켰다. BK 사업은 대학의 인문학 위기가 사회문제로 본격 부상한 2000년 후반들어 인문한국(HK) 지원사업으로 확대개편됐다. 대학 바깥에서는 철학아카데미, 수유 너머, 지행네트워크, 다중지성의 정원 등과 같은 비제도권의 인문학 학습공등체가 출범하면서 대중지성의 시대가 시작됐다.

인문학 붐은 대학 바깥의 연구공동체가 주도했다. 그것은 대학이 자본에 포섭되면서 자율성과 사회 비판의식을 상실한 것이 한 이유가 된다. 수유 너머가 비판적인 신진 연구자들을 끌어들이며 외연을 확대해갈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또 연구 주제 선택이나 지식 생산에서 대학의 비교우위가 사라지고, 대학이 신진연구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기반을 상실해간 점도 연구공동체 확산의 한 요인이 되었다. (이명원, ‘인문공동체가 증가하는 이유’. <아티클> 20125)

대학 바깥의 연구공동체는 대학의 교양교육 퇴조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자본에 휘둘린 대학이 취업 기관으로 전락하자 인문 교양교육에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이 학교 밖 인문학공동체를 주목한 것이다. 또 이들 연구공동체는 국가 주도의 공교육을 비판하면서 대안교육의 장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많은 연구공동체의 경우 1970~80년대 대학을 보낸 진보적 세대들이 주도했는데, 이들은 학문의 권력화와 상품화에 반대하는 실천인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외부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인문학이 진흥을 위한 객관적 조건이 아무리 성숙해 있다 할지라도 개인의 가치나 취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성장할 수가 없다. 인간 근원에 대한 물음, 자아 성찰 분위기,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 등은 인문학 진흥의 필수 요건이다. 길담서원 박성준 대표(전 성공회대교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한평생을 거의 살고 나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칠십 고개가 눈앞에 와 있었다. 68세 때였다. 이 때 부딪친 문제가 내가 죽는다는 문제였다. 사람이 죽는다와 내가 죽는다는 다르다.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죽는다는 생각, 생과 사의 문제, 내가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멸하는 내가 남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 시점에서 난생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201426일 필자 인터뷰)

 

4. 대학 밖에서 보는 인문한국 지원사업

 

인문한국(HK) 협의회가 발간한 브로셔를 보면, 인문한국 지원사업은 대학연구소의 연구기반 구축 및 연구역량 강화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소를 육성하는 사업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대학 교수나 연구자 이외에 인문한국(HK) 지원사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높다는 기자들 가운데에서도 HK의 의미와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간혹 언론사에 칼럼이나 원고를 투고하는 HK 교수들이 있는데, 필자는 간혹 HK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동료들로부터 받을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한국(HK) 사업은 박사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부 프로젝트로 인식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한국 지원사업은 인문학의 학문적 재구조화를 통해 사회적 소통성을 제고하며 인문학의 융복합화를 추진하여 학문의 분과성·폐쇄성을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대학 연구소와 연구자를 위한 지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연구재단의 HK사업 예산은 대부분은 대학연구소로 투입된다. 연구재단이 HK사업을 시작한 2007년 이후 인문분야와 해외지역 분야의 프로젝트 지원을 받는 사업의 주체는 모두 대학이나 대학 연구소이다. 연구재단은 최근 들어 시민대상 강좌에도 예산 지원을 하기 시작했으나 그 수는 미미하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한 57개 시민대상 강좌 가운데 대학이 아닌 일반 기관이나 단체는 대구 시각장애인문화원, 노원 나눔의집, 대한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 지원센터 등 세 곳에 지나지 않았다. 강좌가 아닌 연구나 번역 사업의 경우 대학 연구소가 지원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한 건도 없었다. 10여년간의 작업 끝에 지난해 논어 주자집주를 비롯해 송대 학자들의 주석을 집대성한 <세주완역 논어집주대전>(4·도서출판 한울)을 완역한 동양고전연구모임 이인서원은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에 번역 지원 신청을 냈다가 조건이 까다로워 지원받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왜 인문한국 사업 지원이 대학으로만 쏠릴까. 그것은 사업이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소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대학이나 연구소가 그 취지에 잘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업 주체가 다양하면 그 내용도 더욱 다양해지고 충실해질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연구소로 제한된 인문한국 지원사업을 지자체, 도서관, 인문학연구모임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지원대상 선정 및 심사의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이 문제는 사회각층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운영하면 공정성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 만약 지원 계획서만으로는 결과물을 담보할 수 없다면 기존 성과물이 있는 연구단체나 기관을 선정해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문한국 지원 사업은 당초 취지대로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일까. 외부에서 대학 내부의 학술 프로젝트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인문한국 지원 사업 중 대학 바깥에 결과물이 공개되는 출판지원 사업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인문한국의 출판 지원사업이란 연구소의 인문학 연구 성과를 총서나 단행본으로 발간하는 일이다. 2007년 인문한국 사업이 시행된 이후 지난해까지 인문한국 연구소에서 발간한 저서와 역서는 모두 1830권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서적들이 지식생산자인 저자나 역자들의 시각에서만 출간되고 소비자인 독자들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생산된 이들 성과물을 놓고 인문학 서적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 최종 보고서와 같다는 비판이 제기된다.(표정훈, ‘인문학에 대한 책들은 인문학적인가’. <싸우는 인문학> 반비)

이러한 인문한국 연구성과물이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인문학전문출판사인 사는 최근 두 대학의 HK 학술 서적 40여권을 출간했다. 그러나 판매부수는 권당 200~300부가 대부분이었으며 1천부 이상 팔린 저서는 단 1종뿐이었다고 한다. 사의 편집장은 “HK 학술 서적은 학제간 융합으로 주제도 다양하고 깊이도 있지만, 연구자의 시각에서 쓰여져 독자들에게는 친절하지 못하다면서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좀더 대중성 있는 주제를 가급적 쉬운 문체로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판사의 대표는 지금까지 인문한국 결과물 가운데 학술적으로 화제가 됐다는 저서를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출판 측면에서 인문한국 사업은 인문학 부흥에 기여하고 있지 못하며 우리들도 그 사업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논문이나 저술 등 HK 출판물을 연구 업적을 평가한다면 편수를 채우는 성과주의에 빠져 인문학 발전으로 나아가지 못한다“HK 성과물을 대중에게 전달하려면 출판사와 함께 기획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문한국 지원사업과 관련해 사업의 연속성, HK 연구교수의 고용 불안, HK교수의 안정적인 연구 보장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5. 인문학 어떻게 진흥시킬 것인가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개막식에 참석해 서점 부스에서 5권의 책을 구입했다. 박 대통령이 구입한 책은 모두 인문서였는데,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해당 책들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출판계는 박 대통령의 도서 구입이 인문출판진흥정책으로 이어질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서울도서전 이벤트는 깜짝쇼로 끝났다. 출판계는 여전히 불황이고 인문서 판매는 기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취임 후 대통령 직속으로 문화융성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산하에 '인문정신 문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인문정신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한국 문화를 국내외로 확산시키겠다는 취지이다.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체육부는 올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해 문화부에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하고 인문·정신문화 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후속 조치에 나설 뜻을 밝혔다.

교육부는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2007년부터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이라는 대형 인문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대학 내 인문학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책으로 시작된 것으로 인문학의 기반을 확충하고 학제간 연구와 사회적 소통 역량을 제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의 인문학 진흥 정책에 대한 대학 밖 인문학 연구자들의 반응은 기대와 경계라는 양면이 교차한다. 시민들을 상대로 대중인문학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 연구공동체들은 정부가 대중인문학 지원에 나서는 데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가 인문학을 국정기조인 창조경제나 문화융성과 연결시키며 관 주도 인문학을 이끌려는 데에는 비판적이다. 한 인문학 연구공동체의 대표는 지난해 서울시의 인문학 중심 평생교육프로그램에 지원신청을 하지 않았다. 인문 공동체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서도, 인문학을 주도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지원은 하되 개입은 않는다는 불개입주의가 인문학 진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인문학의 진흥에 왕도는 없다. 지원 규모에 비례해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HK사업은 학문간의 소통과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소통은 학문간, 학제간 뿐 아니라 연구자와 대중 사이에서도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HK사업은 상대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데 미흡했다. HK사업의 목적에는 인문학 연구의 인프라 구축 이외에 인문학의 사회적 소통 역량 강화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사업이 연구소의 인문학 연구 역량 강화에 중점이 두어졌다면, 이제 인문학 가치의 사회적 확산에도 눈을 돌리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올해 8년차를 맞는 HK사업이 이제는 인문학 연구를 대중인문학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찾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필자는 이를 위해 한국연구재단에 인문학의 대중화 연구사업을 정책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인문학을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데 있어 지나치게 실용으로 빠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정부 뿐 아니라 인문학 연구자, 대중적 인문학자들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인간과 세상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을 연구하고 확산시켜 나갈까 하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일은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학습하는 것이다. 정부와 학자, 인문학 연구공동체는 어디까지나 이러한 시민들을 위한 조력자일 뿐이다.

*한국연구재단 주최,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주관 '한국인문학의 미래' 정책 포럼 발표문(2014년 2월21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