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2월19일 경향신문에는 ‘새마을 훈풍에 쫓겨난 폐습(弊習) 300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경남 울주군의 한 갯마을에서 정월대보름을 계기로 300년 동안 계속돼온 ‘미신행사’를 청산했다는 내용인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울주군 온산면 당월부락은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마을인데도, 풍어제나 굿을 한 해에 20여차례 치르며 소요 비용이 50만원이나 되었다. 그러나 매년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해도 고기잡이나 마을의 안녕이 바라는 것처럼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에 새마을지도자 김모씨가 나서 미신을 일소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마침내 모든 마을 제사와 굿을 없애기로 결정한다.



당시 기사는 마을총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용왕이 노하면 금방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질 줄 알고 오랜 세월 미신의 공포 속에서 살아왔던 것. 이러한 마을사람들이 대보름부터 모든 부락 제사와 굿을 없애기로 하고 대보름 풍어제에 쓰려던 돈 15만3000원을 몽땅 새마을사업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5일 부락 주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될 때 분위기는 숙연하기까지 했다.”

1970년대 초반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미신 타파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시기였다. 굿은 물론 당산제나 풍어제와 같은 마을 제사도 미신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새마을지도자가 ‘미신 타파 운동’에 앞장섰다. 당월부락의 김씨도 그러한 운동의 주역이었을 것이다. 당시 신문은 김씨의 영웅담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수백년 지켜 내려온 관습을 이치로 따져 타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신문에 갯마을 당월부락의 전경과 함께 김씨의 얼굴사진이 돋보이게 실린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농촌의 많은 전통 풍습과 민속놀이들이 ‘폐습’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울주군 당월부락의 ‘미신 청산’은 그 생생한 사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울주군 당월리는 온산산업단지가 들어서 초가와 기와집이 어우러졌던 갯마을의 옛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마을굿이나 제사 풍습은 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오늘(14일)은 정월대보름이다. 그러나 동해안 별신굿, 당산제, 지신밟기, 솟대깎기와 같은 대보름의 세시풍속은 민속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 됐다. 근대화·산업화의 영향도 없지 않겠지만, 새마을운동과 같은 관변 주도의 ‘미신 청산’ 운동도 한몫했을 것이다.

조운찬 문화에디터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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