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탐방길에 중국 상하이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시대별이 아닌 주제별 전시를 취한 박물관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아낌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고대 청동거울로 채운 전시관이나 옥공예품 전문의 옥기관(玉器館), 인장·전각만을 전시한 새인관(璽印館)은 상하이박물관의 특징을 잘 보여줬다. 내가 관심을 가진 곳은 역대 글자와 서예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서법관(書法館)이었다.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 진나라의 전서 글씨에서부터 한, 남북조, 당, 송, 명, 청으로 이어지는 명가들의 작품에서 중국 서예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틀 뒤 상하이의 남쪽 샤오싱을 찾았을 때는 도시 초입의 ‘서성고리(書聖故里)’라는 표지판이 눈을 사로잡았다. ‘서성’으로 불리는 동진 때의 서예가 왕희지가 살았던 마을이라는 뜻이다. 왕희지는 샤오싱의 대표 관광상품이다. 서성고리뿐 아니라 왕희지가 당대의 문인들과 시회를 가졌다는 회계산 근처의 난정(蘭亭)은 국제적인 명소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왕희지의 유명한 글씨 ‘난정집서’ 한 폭씩을 구입한다고 한다. 샤오싱시는 30년 전부터 매년 삼짇날 난정에서 중국 서예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중국은 한자의 본국이면서 서예의 고향이다. 그들에게 서예는 심신수양의 수단이자 예술의 원천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서예의 전통이 끊어졌으나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는 지난해 전국 초·중교에 서예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서예교육 지도요강’을 발표하는 등 서예 수업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나온 중국작가 저우쥔제의 작품 (출처:경향DB)

중국 서예의 현주소는 우리와 크게 대비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10여년 전만 해도 한자와 서예를 가르치는 학원이나 교습소가 한두 개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초·중교 미술시간에 붓글씨를 넣어 가르쳤으나 오늘날 학생들이 학교에서 붓을 잡을 기회는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전통문화대학은 문화예술을 특화시켜 가르치는 국립대학이지만, 서예학과를 두지 않고 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서예과’라는 이름으로 서예를 가르치는 사립대학이 더러 있긴 했다. 그러나 지금은 폐과되거나 ‘서예문자학과’ ‘서예문화예술학과’ 등으로 개명한 대학이 많다. 서예가 홀대당하는 한 단면이다.

전국 600여개 박물관 및 미술관 가운데 서예를 다루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예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전담 학예사가 없어 기획전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다. 서예전문박물관으로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서예박물관은 1988년 개관 이후 ‘한국서예사특별전’ ‘김생 1300주년 특별전’ ‘추사 김정희전’ ‘다산 정약용전’ 등 굵직한 기획전시를 통해 한국 서예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문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서예 홀대 정책으로 기구 개편과 함께 서예박물관의 공간 절반 이상을 현대무용단, 오페라단, 발레단 등 국립공연단체에 빼앗기면서 절름발이 박물관으로 전락했다. 2011년 이후 서예박물관에서 자체 기획전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터에 서예 문화와 시장이 만들어질 턱이 없다. 예전에는 그림을 서화(書畵)라고 부르며 글씨와 회화를 함께 일컬었지만, 지금 그림시장에서 글씨가 거론되는 일은 거의 없다. 고서화 전문가들은 인사동 화랑가에서 서예시장이 실종됐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치권과 문화계에서 서예를 진흥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는 최재천 의원의 주도로 제1차 서예진흥정책포럼이 열려 서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럼을 계기로 서예협회, 서가협회 등으로 사분오열돼 있던 서예단체들은 한국서예단체총협의회를 결성해 서예 발전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다음달에는 서예진흥위원회도 창립된다. 예술의전당은 최근 전시사업부에 소속돼 있던 서예 분야를 서예부로 독립, 승격시킨 뒤 서예박물관 정상화에 착수키로 했다고 한다.

서예는 문자문화의 꽃이다. 동양 인문정신이 숨쉬는 샘이다. 더 이상 화석화된 장르는 아니다. 정보기술이 넘쳐나면서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느리게 쓰는 서예는 빠르게 치는 컴퓨터의 폐해를 치유할 수 있는 ‘오래된 미래’다. 서예 진흥은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문화의 융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든 현대인들에게 다른 한손엔 붓을 들자고 제안해본다.

 

조운찬 문화에디터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