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고 기업이 있다.”

1969년 10월25일자 경향신문이 한 강연을 소개하면서 뽑은 기사 제목이다. 신문은 전날 한국가톨릭평신도 사도직협의회 등의 주최로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김수환 추기경의 강연 내용을 간추려 실었다. 김 추기경은 ‘노동문제 이렇게 본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시종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이 있고 경제가 있다. 인간을 위해서 경제성장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너무나 자주 정반대의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동문제이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김 추기경은 강연 서두에서부터 노동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가 우리나라 기업 내에서 충분히 인간 대우를 받고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희소할 것”이라며 노동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 기업주들에게 8시간 노동제를 준수하고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할 것을 촉구했다. 김 추기경은 이와 함께 기업성장과 수출진흥을 위주로 하는 정부 정책이 저임금과 인간 소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늘날 이러한 강연을 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당시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가속도를 내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인권보다는 경제성장이 강조되었고, 노동자들은 생산의 도구로 전락했다. 청계천에서 전태일이 분신하기 한 해 전이었으니 노동3권 같은 기본권에 대한 외침은 거의 들리지 않던 때였다. 당시 강연이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노동권과 인권이 무시되던 엄혹한 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 추기경은 47세의 젊은 성직자였고, 강연은 추기경에 서임된 지 6개월 만에 이뤄졌다. 그래서 그의 첫 대중 강연은 추기경의 행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되었고 이후의 발길 역시 노동현장, 시장, 철거민촌, 교도소 등 ‘낮은 곳’으로 이어졌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새 추기경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사제의 정치참여를 비판한 그에 대한 추기경 서임이 천주교의 보수색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던 터였다. 다행히 염 추기경은 “화해와 통합을 위해선 내가 모범을 보이겠다”면서 편가르기를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겠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의 초심이 끝까지 이어지길 빌어본다.

조운찬 문화에디터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