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져본 ‘행복한 책읽기’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이 춤추고 발이 뛰었다’(手之舞之足之蹈之)는 옛사람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무릎을 치면서 찬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초 출판사에서 ‘우현 고유섭 전집’(열화당)을 보내왔을 때만 해도, 훑어본 뒤 전문가에게 서평을 맡기는 것으로 색책(塞責)하려 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읽을수록 글맛에 젖어들었고, 우현이라는 거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고유섭 미술사학가 (경향DB)


물론 열 권의 전집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미학과 미술평론>(8권)은 몇 개의 글을 듬성듬성 보았고, <송도의 고적>(7권)은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그만뒀다. <조선미술사> <조선탑파연구> <고려청자> <조선건축미술사 초고>와 같은 1~6권은 아예 보지 않았다. 일전에 일별한 적이 있는 데다, 전문 분야여서 가벼운 독서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읽은 책은 전집의 9~10권인 <수상 일기 기행 시>와 <조선금석학초고> 정도인데, 나를 몰입시킨 것은 산문집인 9권이었다.


먼저 눈을 댄 글은 ‘고구려 고도 국내성 유관기(遊觀記)’였다. 오늘날 중국 지안을 일컫는 국내성은 나도 여러 번 찾은 곳이어서, 그의 역사유적에 대한 안목이 궁금했다. 이 글이 발표된 게 1938년(‘조광’ 9월호)인 것을 보면 우현은 그해 5월 국내성을 찾은 듯싶다. 그는 개성부립박물관장 시절 개성에서 열차를 타고 강계~만포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다. 그때의 차창 밖 풍경을 그는 ‘사우사청(乍雨乍晴)하는 산천풍경이 그대로 곧 활화경(活畵景)이요 환희경(歡喜境)이다’라고 적었다. 옛사람의 일기에 자주 보이는 ‘사우사청’(잠깐잠깐 비오다 갬)이나 ‘활화경’(살아있는 그림 같은 풍경) 같은 혼용체는 한문에서 한글로 언어가 바뀌어가는 시기를 관통했던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루한 글쓰기는 아니다. 때론 미술사학자로서의 정확한 관찰력도 보인다. 나무로 덮인 채 방치된 장군총에 대한 기록은 그가 문화유산 답사의 선구자임을 확인시켜 준다. ‘장군총은 한 개의 모뉴먼트이다. 복원을 한다면 태왕릉, 천추총, 서대총 등이 장군총에 비하여 기경(基徑·바닥지름)이 거의 배수(倍數)에 달한다. 하지만 위용의 호장(豪壯)하기는 다시없는 명물이다. 칠 층 계단의 방형 피라미드이다. 각 층의 축석(築石) 물림이 긴치(緊緻·밀접하고 치밀함)할뿐더러 주위에는 각 변(邊) 세 개씩의 대석(大石)이 돌려 있다.’ ‘국내성 유관기’는 국내 최초의 지안 고구려 사적 탐방기다.


우현 고유섭(1905~1944)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다.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의 경성제국대학 동급생이었던 그는 당시 경성제대를 다닌 한국인들이 대부분 국어학이나 국문학을 택했을 때, 홀로 미학을 전공해 ‘우리 고대 미술의 진상을 천명하고 우리 고고학의 토대를 구축했다’(일석의 회고). 미술사학자였지만, 그의 학문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 열려 있었다. 그는 한국 고미술을 ‘여유있는 이 땅의 생활력의 잉여잔재가 아니요, 누천년간 가난과 싸우고 온 끈기있는 생활의 가장 충실한 표현이요, 창조요, 생산’이라고 정의하며 그것이 ‘고상한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면, ‘장부의 일생’을 어찌 헛되이 그곳에 바치겠냐고 적었다.


우현의 학문은 ‘유희’가 아니라 처절한 ‘고투’의 산물이었다. 그는 한국 미를 ‘국학’의 틀에 가두어 보지 않았다. 니체, 루소, 노발리스 등 서양사상뿐 아니라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등 문학에도 밝았던 그는 동양과 서양 학술을 비교하고 교차시켜 한국 미학을 조망하려 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신부 세르게이’에 보이는 신(神)에 대한 관념과 고려 문장가 이규보의 글에 나타난 부처상을 비교하면서 쓴 글(‘정적한 신의 세계’)에서는 시대와 지역, 종교는 달라도 사람들이 추구하는 신성(神聖)은 하나라는 진리를 깨우쳐 준다. 또 ‘유어예’(遊於藝)라는 글에서는 독일 시인 실러의 ‘유희 충돌설’과 공자의 예술관을 비교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우현을 미술사가, 미학자가 아닌 위대한 인문학자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아니 39세에 요절하고서도 200여편의 글을 남긴 천재 지식인으로 칭하는 게 옳을지 모르겠다. 누구나 그의 글을 펼쳐 읽어본다면 수긍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20여년 전 학고재에서 ‘최순우 전집’(5권)을 출간하면서 이 가운데 명문장을 뽑아 펴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최순우라는 미술사학자와 함께 한국 고미술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최순우를 미술사가로 키운 주인공이 우현 고유섭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현 전집을 읽다보면 최순우의 글을 읽는 듯한 기시감이 드는데, 그것은 최순우가 스승의 학문과 글쓰기를 본받았기 때문이다. 우현 전집은 거질인 데다 학술 저술이 많아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참에 <무량수전…>과 같은, 우현의 글을 모은 대중서를 펴낼 것을 출판사에 제안해 본다.

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