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법원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한 역사학자에게 실형을 선고해 화제가 됐다. 당시 법원은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이 <히틀러의 전쟁> 등 30여권의 저서와 강연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정하고 히틀러를 옹호했다며 그에게 실형 3년을 선고했다. 이스라엘과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인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역사학자 어빙은 나치 옹호자로 악명이 높아 국제 여론은 그의 단죄가 정당하다는 쪽이 많았다. 그러나 역사 탐구를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역사학자가 연구결과 때문에 실형을 받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홀로코스트 논쟁은 역사학계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영국 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는 <홀로코스트 부인하기>(1993)라는 책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해온 서구 학계의 흐름을 소개하며 어빙을 ‘홀로코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위험한 대변인’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어빙은 립스타트와 책을 펴낸 펭귄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사건은 학계의 ‘홀로코스트 논쟁’으로 비화했다. 2년여간의 소송에서 어빙은 패소했다. 역사 연구라 하더라도 명백한 왜곡은 ‘역사’가 될 수 없다는 심판이었다. 당시 역사전문가로서 재판에 참여한 리처드 에번스는 이 사건을 정리한 저서에서 “(어빙 재판은) 진짜 역사와 정치적 목적을 지닌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르쳐줬다”고 썼다.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사실’보다는 ‘진실’을 중시한다. 역사학자 E H 카의 산의 비유는 역사의 사실과 진실의 문제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산의 객관적인 형태가 없다거나 반대로 무궁무진한 형태를 갖고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역사로 기록되기까지에는 많은 의견 대립과 논쟁을 낳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이 국가 간 역사전쟁으로까지 발전한다. 홀로코스트가 20세기 서양의 대표적 역사논쟁이라면 난징대학살은 중국과 일본의 지루한 ‘역사전쟁’을 통해 진실이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1937년 12월부터 4개월간 중국 난징에서 일어난 일본 군인들의 살육과 강간, 약탈이 역사서에 ‘난징대학살’로 기록되는 데는 60년 이상의 논쟁이 필요했다. 학살의 원인과 양상, 사망자 수를 두고 일본의 진보·보수 학자 사이는 물론 일본과 중국 간에 상반되는 연구가 많아 역사적 진실이 오랫동안 안갯속에 싸였다. 이런 가운데 학살의 진실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이 분야 연구사에서 한 획을 그은 아이리스 창이 등장했다. 중국계 미국 작가인 창은 <난징의 강간>(1997)을 펴내며 일본인 가해자, 중국인 피해자, 서구의 목격자라는 시선으로 난징대학살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출간 이후 일부 역사가들이 창의 저서에 실린 일부 사진의 진위와 내용의 부정확성을 문제삼아 공격하고 나서면서 이 책은 또 다른 논쟁을 불렀다. 이 일로 아이리스 창은 심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2004년 11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 현대사를 굴절시킨 5·16도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논쟁이라기보다는 정치논쟁이었다. 정치권력이 역사를 농단한 군사주의의 유산이었다. 처음 쿠데타 세력이 5·16을 ‘혁명’이라 부르자 뒤따른 군사정권은 그 이름을 고수했다. 하지만 역사가는 끝내 ‘군사정변’으로 이름을 바로잡았고, 1996년 이후 모든 역사교과서는 5·16을 ‘정변’으로 기록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의 입에서 해괴망측한 발언이 쏟아졌다. 그들은 청문회에서 5·16의 성격을 묻자 기상천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을 “역사적·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황교안 법무)이라거나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류길재 통일)고 말한 장관 후보자들은 ‘무식’해서일까.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돼 있다”(조윤선 여성가족)는 대답에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답변이 어렵다”(유정복 안전행정)거나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달라”(서남수 교육)는 발언에서는 연민까지 느껴진다. 


E H 카는 이런 말도 했다. “한 사회가 서술하지 못하는 역사는 어떤 종류의 역사인가 하는 문제보다 그 사회의 성격을 더 의미심장하게 지시해주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5·16은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사건인 셈이다.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하고 난 뒤 이를 ‘활용’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그래서 역사를 바르게 ‘읽는’ 것은 역사를 ‘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역사를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정부의 역할도 강조돼야 한다. 그런데 국정을 이끌겠다는 국무위원들이 정치적 득실을 따져가며 역사를 무시하고 회피한다면? 이 또한 역사 심판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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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