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이었다. 토요일이어서 게으름을 피워 늦잠을 잔 뒤 점심을 먹고 ‘다산 학술대회’가 열리는 고려대 인촌기념관으로 향했다. 다산 탄신 250주년을 기념해 한국실학학회 등이 주최한 학술대회는 성황이었다. 발표회장에서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기념관 로비에서는 ‘역사학대회’에서 자주 보았던 영인본 출판사들이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주말 학술대회가 다들 그렇겠지!’ 하고 심드렁하게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주최 측은 준비한 발표자료집 500부가 이날 모두 팔려나갔다고 했다. 학회의 열기에 휩싸여 나는 이날 오후 한나절을 인촌기념관에서 보냈다. <목민심서>의 저작과정을 발표한 고서연구가 박철상씨의 글과 다산 저술의 유통과정을 서지학적으로 밝힌 노경희 울산대 교수의 논문이 인상적이었다. 발표문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나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발표자들 가운데 역사학자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모두 23명이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역사 전공자는 3~4명에 그쳤고 한문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 연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역사학자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았다. 7월 초에는 다산학술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다산학 국제학술대회’도 참관했다. 국제행사답게 크게 붐볐지만 역사학자들이 눈에 띄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역사학계가 실학이나 다산 정약용 연구를 주도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학문에서도 ‘통섭과 융합’은 중요하다. 한문학 등 사학의 인접 분야에서 경계를 뛰어넘어 자료를 발굴하고 해석하면서 실학 연구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전체 학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천관우, 한우근, 이우성, 김용섭 등 역사학자들이 한국 실학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던 점을 떠올리며 역사학계의 실학에 대한 무관심을 쉬이 납득하지 못했다.

 

공직자들이 다산동상 앞에서 다산정신을 본받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다산 탄신 250돌인 올해는 임진왜란 발발 7주갑(420주년)이기도 하다. 최근 한 출판사는 김성한의 역사소설 <임진왜란>을 <7년전쟁>이란 이름으로 22년 만에 복간했다. 해당 출판사 편집자는 “임진란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동아시아 3국이 부딪쳤던 국제전이었다”며 3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명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에 따라 <7년전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임진왜란은 연구해야 할 일이 많다. 임진왜란, 7년전쟁, 삼국전쟁, 임진전쟁으로 혼용되는 명칭을 정리해야 할 책임은 역사학자에게 있지 않은가.

임진왜란 발발일(6월2일, 음 4월13일)이 지난 지 두 달이 되어 가지만 역사학회에서 이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과문한지 모르겠지만 눈에 띄는 심포지엄도 저술도 찾기 어렵다. 10년 전만 해도 역사분야 저술은 일간지 문화면을 채우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요즘 신문에서 ‘역사’는 사라졌다. 어쩌다 논쟁적인 저술이 나와도 토론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중진 한국사학자 이태진 교수가 최근 펴낸 <새한국사>는 외계충격설과 자연재해 사상을 우리 역사에 적용해 쓴, 매우 실험적이고 논쟁적인 통사이다. 출간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역사학계에서 반응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도 3국의 학자들이 근현대사를 함께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한데 학계의 본격 서평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에릭 홉스봄은 <역사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들의 주위를 각양각색의 이론가들이 맴돌거나, 서로의 저작물을 되새김질한다. 그들 중 논쟁에 참가한 역사가들은 적어도 서로의 저술을 다룰 때에는 호전적이다. 이렇게 전장에서 싸우는 와중에 몇몇 볼만한 학문적 논쟁들이 태어났다.”

역사학자들이 역사 논쟁과 비판을 외면할 때 비역사가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역사를 농단한다.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이 “5·16은 불가피했던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한 것이나 뉴라이트의 이데올로그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5·16의 특이성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강변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선후보나 정치인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고 정치적 비전을 갖게 하려면 춘추필법과 같은 엄정한 역사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5·16은 역사학계에서 쿠데타라고 이미 심판을 내린 사건이다. 학계의 평가가 끝난 사건조차 견강부회하며 왜곡하는 상황이니 논쟁적인 역사는 오죽할까.

역사학자 이덕일씨는 보름 전 교보문고 서울 강남점에서 강연할 때 통로까지 꽉 채운 청중에게서 우리 역사에 대한 갈증을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국민들에게 역사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정치인들에게 역사의 두려움을 일깨워줄 책무는 바로 역사 연구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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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운찬